[김희영의 희망편지] 이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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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이별에 대하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1.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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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계산 속에 살아가는 삶이란, 텅 빈 책꽂이에 덩그러니 꽂힌 책 한 권 같았다. 홀로 바쁘게 살아가는 커리어 맨 인양 으쓱거리지만, 꽉 들어찬 자존감 곁에는 늘 외로움이 따랐다. 어떤 방향으로 쓰러져도 이상할 곳 없는 세상에서 때론 쓰러져도 버틸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길 바라기도 했다. 옆에 누군가가 없어도 홀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쓰러져가는 삶에 대고 악다구니처럼 버텼다. 그래도 계산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했던 건, 마음을 다 준 이에게 언젠가는 버림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삶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연륜이 깊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걸 깨달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배반을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좋은 사람도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순간은 여러 형태로 다가왔다. 업무적이든, 교우관계든, 가족의 일이든, 사랑이든. 사람을 믿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왜 우리는 그토록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애를 썼던 걸까.

처음엔 몰라서 상처를 받았다고 치자. 다시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머리처럼 냉철하지 못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지 않게 되었대도, 알고 지내던 사람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우리는 또다시 사람 간의 벽을 쳤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도, 사랑을 주던 사람도 점점 지쳐 떠나게 되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역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가. 매번 깨닫는 세상의 이치를 마음은 또 금세 까먹고, 좋았던 순간만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것 따위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억지로 일을 늘려서, 외로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무던히도 노력했다. 세수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울었다. 이별이 이렇게 아픈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다.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없다면, 이별이 있는 사랑 따위 시작하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그러나 사랑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 다른 누군가는 좋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생각으로 여러 차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랑에 흔들리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자던 내 다짐에도 바람이 불었다. 처음엔 살랑 불었던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두 눈을 마주 보며 한 번만 믿어달라던 그 사람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해, 꽤 오래 그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랑에도 이별이 찾아왔다.

상처에 무던해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 사랑에 대한 후회를 반면교사 삼아, 나는 정말 열심히 두 번째 사랑에 온 신경을 다했다. 그러니 이별도 지난 사랑만큼 아프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었고, 그랬으니 미련도 없었다. 어쩌면 상처에 익숙해지는 것이 삶을 대하는 방식에 연륜이 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별 후에 찾아오는 기억에는 늘 좋은 향기만 남았다. 그 풋풋한 향내가 자꾸만, 이별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 것 같다. 모든 이별에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따랐다. 이별로 인해 이별 속에 영혼을 갇히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이별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것인지 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외로움 속에서 홀로 사랑과 맞서며 살아갈 것인지, 이별 속에서 괴로워할 것인지, 이별을 이해할 것인지, 분명한 것은 그 아픔 속에 매몰되지 않을 것. 아무도 우리의 이별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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